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2007)> 도서관 밖

여러 철학자들의 사랑에 대한 담론을 스토리에 담아 풀어내려 하니 약간 신경증적이 되어버린 책
그러나 몇몇 구절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 깜짝 놀라게 만든다.
책의 전체적 줄거리는 남자가 클로이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되고 그 여자와 약 1년간 연인 관계로 지내다가 헤어지는 과정이다.
1인칭 시점에서 사건보다는 주로 남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서술하며 사랑과 연애, 연인의 감정에 대해 철학적으로 분석했다.
굳이 내 경우에 대입하려 하지 말고 철학 담론을 쉽고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생각하며 읽으면 좋을 듯


p.39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녀와 비교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가 내 초라한 입에서 떨어지는 말(그것도 내 혀가 풀려야 가능하겠지만) 가운데 몇 마디에 기꺼이 대꾸를 해주는 것도 영광인데, 하물며 나와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또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고 나왔다는 것("이 옷 괜찮아요?" 그녀는 차 안에서 묻더니 덧붙였다. "괜찮아야 돼요. 여섯 번씩이나 옷을 바꿔 입어볼 수는 없는 것 아니에요.")은 최고의 영광이 아닌가.

p. 41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p. 59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 어떤 사람(천사)을 보면서 그 사람과 함께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상상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위험을 잊기 쉽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다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p. 80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콤씁쓸한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22.

 서양 사상의 오래되고 우울한 전통은 사랑은 본질적으로 보답받을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상호 간의 사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사랑은 방향일 뿐 공간은 아니다. 목표를 성취하면 [침대에서건 어떤 식으로건]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면 소진되어버린다. 12세기 프로방스의 음유시인들의 시는 모두 성교를 미루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시인은 되풀이하여 남자의 간절한 제안을 거절하는 여자에게 탄식을 늘어놓는다. 400년 뒤의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 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불태우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따르면 연인들은 누군가를 향한 갈망과 그런 갈망을 없애고자 하는 바램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p.114

 편협함은 두 가지 요소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르다는 관념이다. 또 하나는 상대가 광명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관념이다. 어느날 밤 클로이와 내가 에릭 로메르의 영화 '그녀는 싫어했고 나는 좋아했다'에 대해서 말다툼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로메르의 영화는 좋을 수도 있고 동시에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말다툼은 차이의 정당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관점을 수용하도록 강제하려는 실력 행사로 전락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클로이의 구두를 싫어한 것도 나는 그 구두를 싫어할 지 몰라도 구두 자체에 원래 싫어할만한 본질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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